조로친선의 상징

날로 비약상승하는 조로관계력사에는 한 국제주의전사를 위해 베풀어주신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사랑의 세계가 뜨겁게 비껴있다.

그가 바로 조로 두 나라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는 이전 쏘련의 전쟁로병인 국제주의전사 야. 떼. 노비첸꼬이다.

노비첸꼬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말몰이군을 하다가 쏘도전쟁시기 붉은군대에 입대하여 싸웠으며 1945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과 함께 대일작전에 참가하였다.

우리 나라가 해방된 후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가까이에서 군무생활을 하게 된 그는 혼란된 국내정세를 바로잡으시며 당을 창건하시고 인민의 국가를 세우며 현대적인 정규무력을 건설하는 거창한 위업을 떠메고나가시는 그이의 영웅상에 깊이 매혹되게 되였다.

하기에 그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1946년 3월 1일 평양역전광장에서 열린 경축대회에서 연설하고계실 때 주석단으로 날아든 수류탄을 지체없이 한몸으로 막아 그이의 신변안전을 목숨으로 보위하였다.

그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발휘한 영웅적위훈을 잊지 않으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1984년 5월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시기 위해 씨비리를 지나가시다가 노보씨비르스크역에서 노비첸꼬와 뜻깊은 상봉을 하시였다.

비록 38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속에 씨비리의 평범한 늙은이로 변하였지만 혈기에 넘치던 젊은 시절의 붉은군대 군관을 대번에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한팔이 없는 그를 뜨겁게 포옹하시며 영접나온 국가간부들에게 노비첸꼬가 발휘하였던 의로운 소행을 이야기하시면서 그의 영웅적행동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 뜻깊은 상봉이 있은 이후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고 그의 가족을 평양에 초청해주시였다.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한 노비첸꼬와 그의 가족을 친히 만나주신 그이께서는 노비첸꼬는 자신의 생명을 구원한 사람들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그는 조쏘친선의 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국제주의자의 세계적전형으로 내세워주시였다.

또한 그의 가족이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만경대고향집과 백두산에도 가보고 개선문, 주체사상탑, 금강산 등 우리 인민이 창조한 기념비적창조물들과 이름난 명승지들을 돌아보면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도록 은정어린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국제주의적의리를 그대로 체현하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1994년 12월 8일 노비첸꼬가 사망하였을 때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과 조전을 보내주시였으며 그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2001년 8월 력사적인 로씨야방문의 길에 오르시였을 때에도 그를 뜨겁게 회고하시며 그의 가족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안겨주시였다.

노비첸꼬와 그의 가족에 대한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의 세계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해 더욱 훌륭히 계승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노비첸꼬의 부인이 사망하였을 때 친히 조전을 보내주시였으며 노비첸꼬의 생일 100돐행사때에는 대표단을 파견하시여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고 그의 묘와 그가 살던 옛집을 훌륭히 꾸리도록 전문건설력량까지 파견해주시였다.

로씨야 노보씨비르스크시로부터 360km 떨어진 뜨라브노예마을의 옛집에 걸려있는 현판에는 《이 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 야꼬브 찌호노비치 노비첸꼬(1914.4.28- 1994.12.8)가 살았다.》는 글이 새겨져있다.

길지 않은 이 문장에는 조로친선의 상징으로 불리우고있는 국제주의전사 야. 떼. 노비첸꼬에 대한 절세위인들의 의리와 조로 두 나라 인민사이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우정이 담겨져있다.(끝)